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때부터 꽤나 최근까지 성씨와 본관이 같은 사이, 즉 동성동본 간 결혼을 금지해왔다. 2005년 3월 31일에 개정되기 전까지 구 민법 제809조 제1항에서는 “동성동본인 혈족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는바, 동성동본 간 혼인은 법률로써 금지되고 있었다. 또한, 같은 법 제815조 제2호에서는 “혼인이 제809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구 민법 809조 제1항 및 제815조 제2호의 규정을 종합하면, 동성동본 간 혼인은 금지될 뿐만 아니라 무효로서 처음부터 효력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과거에는 동성동본 금혼제도는 우생학적 이유, 유교 상의 가족의 범위 등에 관한 이유가 있었을지언정, 현대 사회에서는 8촌 이내 혈족을 가까운 친척으로 여긴다는 사고가 보편적이지 않고, 사실 누가 친척인지 알려주는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촌수가 먼 친척은 존재 자체도 알기 어려워 사실상 가족이라는 인식을 갖기 어려우며, 그간 제기된 우생학적 이유에 관한 과학적인 근거나 효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에 따라 1978년, 1988년, 1996년에 각 1년씩 「혼인에 관한 특례법」을 시행하여 동성동본의 사실혼 부부가 혼인신고를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구제하였고, 헌법재판소는 1997년 7월 16일 위 민법 제809조에 대하여 1998년까지 개정하지 않을 시 그 효력이 상실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다(헌법재판소 1997.7.16. 95헌가6 전원재판부 결정). 위 조문은 시한을 넘기도록 개정되지 않았고 결국 효력이 상실되었다.
그리고 2005년 3월 31일에 비로소 공식적인 법률의 개정이 이루어졌는바, 남녀평등과 혼인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동성동본 금혼제도를 폐지하되 근친혼 금지제도로 전환하여, 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 사이에서 혼인하지 못하도록 하고, 6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6촌 이내의 혈족, 배우자의 4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사이, 6촌 이내의 양부모계(養父母系)의 혈족이었던 자와 4촌 이내의 양부모계의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 역시 혼인하지 못하도록 하여, 본적과는 관계없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근친혼만을 금지하였다.
2. 근친혼의 무효 조항에 관한 최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최근 헌법재판소는 2022년 10월 27일에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결혼을 금지하는 민법 조항과 근친혼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결혼을 무효로 보는 규정에 대하여 판단하였고, 근친혼을 금지하는 민법 규정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지만, 근친혼이 무효라는 민법 규정은 헌법에 어긋나므로 2024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하지 않을 경우 그 효력이 상실된다는 결정을 하였다(헌법재판소 2022. 10. 27. 선고 2018헌바115 결정).
우선, 근친혼을 금지하는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관의 9명 중 5명이 합헌, 4명이 위헌으로 보았다. 해당 규정을 합헌으로 보는 의견은 근친혼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가까운 혈족 사이의 관계 및 지위에 관련된 혼란을 막고, 가족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근친혼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친척이나 가족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현재에도 8촌 이내 혈족을 가까운 친척으로 보는 사고가 보편적이라고 판단하였다. 또 비록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하여 결혼이 금지되는 혈족의 범위가 넓기는 하나, 국가마다 사회·문화·역사적 배경이 다르므로 이를 단순비교 해서는 안 되며, 8촌 이내 혈족의 결혼을 금지해 얻는 공적 이익이 매우 중요하므로 근친혼 금지 규정이 헌법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근친혼을 무효로 보는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의 근거는, 8촌 이내 혈족이라 하더라도 이미 자녀를 낳았거나 부부로서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는 등 가족 공동체로 볼 수 있는데도 결혼을 무효로 할 경우 가족의 해체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가족제도의 유지라는 근친혼 금지 규정의 목적에 반한다는 점, 결혼 이후에 8촌 이내 혈족임을 알게 되었을 때 이해관계인은 언제든지 혼인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결혼 당사자나 그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었다.
결국 직계혈족이나 형제자매와 같이 가족 제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의 근친혼만 무효로 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취소로 하여도 근친혼 금지 규정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근친혼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규정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3. 근친혼의 무효 조항에 관한 국회의 민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러한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현재 국회에서는 2022년 11월 10일 ‘근친혼 금지 규정은 그대로 두되, 근친혼 금지 규정 위반 시 무효가 아닌 취소로 하고 근친혼임을 안 날로부터 6월, 결혼한 날로부터 2년을 지나면 더 이상 취소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하였다.
근친혼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결혼에 대하여 무효라고 규정할 경우와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할 경우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근친혼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결혼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볼 경우, 1-1) 당사자가 아닌 이해관계인도 결혼의 무효를 언제든지 주장할 수 있고, 2-1) 처음부터 결혼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되며, 3-1) 결혼 당사자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혼외자로서 아버지와의 친자관계가 인정되지 못하였다.
이에 반하여 근친혼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결혼을 취소 대상으로 규율할 경우, 1-2) 결혼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는 청구권자 및 청구기한에 제한이 있는바, 당사자가 아닌 이해관계인이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결혼의 취소를 언제든지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게 되며, 2-2) 당연하게 처음부터 결혼 자체가 성립한 적이 없던 것처럼 되지 않고 취소하지 않는 한 결혼은 유효한 것으로 판단되며, 3-2) 결혼이 취소되기 전까지 태어난 자녀는 아버지와의 친자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
4. 마무리하며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이 누군가를 가족으라 인식하는 범주가 크게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제는 우리나라 1인 가구가 주된 가구 형태로 자리잡았다. 사실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본적에 대하여도 알고 있더라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거나 본적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현대인이 대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4촌을 넘어선 6촌, 8촌의 친인척과 평생을 일면식도 없이 살거나 심지어 그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에 따라 운명적으로 만난 결혼 상대방이 알고 보니 동성동본이거나 먼 친인척이라는 사정만으로 결혼을 금하는 것은 부당하고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에 대하여는 사회 전반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다만 금혼하여야 할 정도로 가까운 친인척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할지, 또한 금친혼 규정을 위반한 결혼에 대하여 당연무효로 봐야 할지 아니면 취소의 대상으로 봐야 할지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견해가 대립하고 있는바, 계속하여 변해가는 가족의 개념과 범주에 따라 공통된 의견으로 수렴될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한 듯 보여진다.